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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행 낚싯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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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9 (토) 13:57
작성자 : 강나루
( fish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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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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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조회: 6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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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75.xxx.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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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행 낚싯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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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 사자섬/2005]
2001년 추자도 푸랭이 닭발고랑 포인트.
사자섬을 돌아 나가는 쪽으로 통발어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장인 듯한 험상궂은 사내가 다짜고짜 소리쳤다.
"낚싯대 빼소!"
낚싯대를 빼라니. 빼 놓은 낚싯댄데? 이번엔 더 큰소리로 고함쳤다.
"낚싯대 빼라니까!!"
아니, 낚싯대를 뺀 상태인데 왜 저 지랄이여? 초릿대부터 끝까지 잘 뽑아 놓았는데 어떻게 또 빼란 말이여. 낚싯대를 거두라는 소린가? 그렇다면 '낚싯대 좀 치워 주세요'라고 해야지, 왜 '빼소'인가? 황씨가 안면을 씰룩거리며 날 쳐다봤다.
미끈하게 잘 빠진 일제 낚싯대와 릴을 몰라보고 저 우라질 놈이...
D사의 육십만 원짜리 낚시복에다 S사의 삼십만 원짜리 갯바위 장화를 신은 것도 모르고 저놈이, 저 저 무식하게 생긴 놈이... 이 황가를 몰라 보다니! 백만 원짜리 낚싯대를 뭘 어쩌라고! 빼라고?
황씨의 화난 모습이 역력했다. 출발 전, 또래의 졸부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는데.
"황가야, 추자도 가거들랑 선장들이 장비보고 대우한다 카더라. 최고급으로 챙기뿌라."
그 말에 거금의 견적을 냈는데, 이 고급 장비들을 몰라주다니! 더군다나 돗수 넣어 맞춘 35만 원짜리 편광 안경을 쓴 모습을 보고 안경방 주인은 흡사 톰 크루저 같다고 했는데... 내가 본 바로는 그 안경이 장날 보따리 장꾼들이 쓴 것보다 별반 나은 것 같지가 않았다. 오른 손엔 가위, 왼 손엔 휴대폰을 든 선글라스 엿장수가 생각나기에, 황씨더러 모 제과업체 사장 같다고 했더니 그날 이후로 내게 고급 케이크를 사흘간이나 먹였었다. 회장 같다고 했으면 다음날의 생일까지 챙겼을 텐데 말이다.
각설하고...
그 해적 같은 선장이 배를 바짝 갯바위로 붙이자 걱정스러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그만 그 해적과 똑 같은 말을 해버렸다.
"황씨! 낚싯대 빼소!"
해적보다 내 말을 듣는 건 당연하였다. 어쨌든 우린 한 팀이지 않은가! 그는 포인트의 발판이 너무 좁아 겨우 밑밥통을 놓고 가방은 세워놓은 채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가방이 곧 떨어질 것 같았다. 엉덩이가 갯바위에 붙어있으니 허리를 구부릴 때마다 그 반동으로 체중이 앞으로 쏠렸다.
"추자 자리는 아부나이(위험)가 좋다 카더라."
험한 발판이 포인트라는 그 졸부의 같잖은 정보, 우리의 황씨가 그걸 놓칠 리는 없지않은가! 낚싯배 선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 곶부리로 올라 섰다. 개선장군처럼 갯바위에 올라 선 그의 폼은 대단했다. G사 낚싯대에 브레이크 릴을 장착한 첫 채비가 바람을 가를 때만 해도 그의 휘파람 소리는 경쾌했다.
다시 각설하고...
통발 선장, 그 해적의 최후 통첩이었다.
"낚싯대 빼라이!"
반말이었다.
저 놈이 이 황가를 몰라보고, 뭣이라? 저 무식한 놈이... 빼긴 뭘 빼! 너나 빼라, 이 화적 같은 놈아! 저 놈이 이젠 반말까지 씨부리네! 황씨의 얼굴이 벌개지자 배는 바로 코앞에서 요란한 모터 소리로 물살을 일궜다. 자칫 원줄이 터질 판이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선장 말을 리바이벌하고 말았다.
"황씨! 빨리 낚싯대 빼라이!"
아무튼 그는 내 말은 잘 듣는다. 황씨는 잽싸게 낚싯대 손잡이를 뒤로 뺐는데 갯바위를 친 그 반동으로 상체는 그만 앞으로 급발진해버렸다. 황씨는 양팔로 팔랑개비를 열심히 돌렸지만 아무래도 rpm이 부족했다. 그 사력의 날개짓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녀비행은 자유낙하로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구명조끼도 걸쳤고 물밑 발판이 좋아 황씨는 내가 던져 준 로프를 잡고 쉽게 올라왔다.
'따그르르, 따그르르' 황씨의 앞니가 오토바이 소리를 냈다.
우선 나의 낚시복을 벗어 입혀주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도록 했다. 손난로를 가슴에다 대고 한기를 막도록 했다.
달그락거리던 황씨의 이빨 속도가 주는가 했더니, 이번엔 끄억끄억 수캐 발정하는 소리를 냈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갔다. 얼쑤! 중썰물이 된 푸랭이 남쪽으로 5메타 30센티짜리 대형 막대찌가 릴을 단 채 한갓지게 제주도로 가는데, 왼쪽의 사자섬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강나루/20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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