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굶주린 손맛을 채우려 길을 떠난다.
꾼으로서 황금연휴를 그냥 보낼소냐..는 아니다. 조용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내 차로 2명이 출발하려 했지만 일행이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혼자 출발.
다른 일행 3명은 따로 출발하여 사천에서 만나기로 약속.
사천 만물낚시에서 간단한 준비물과 밑밥을 챙긴다.
FTV '어대어다(魚大魚多)'의 주인공 정종현 씨 사진이 크게 걸려 있는 만물낚시 간판.
자주 들르는 곳이지만 주인공을 뵌 적은 한번도 없다.
새벽시간에는 사모님(?)만이 언제나 꾼들을 반기신다.
밑밥은 크릴6 + 파우더3 + 압맥3.
만물낚시에서는 '만물천하'라는 파우더를 판매하고 있는데 직접 제조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구성성분이나 효능에 대해서는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따로 출발한 일행 3명을 이곳에서 만난다.
원래 남해 장곶이에 갈 계획이었지만 전날 다녀온 조우의 전언에 의하면 그곳 상황이 좋지 못하였다한다.
그래서 장소를 급변경.
삼천포 내만으로 향한다.
(사실, 권하건데, 얇은 귀에 의지해 처음 마음 먹었던 낚시 장소를 변경하지 말라. 다른 곳에서 실패하면 그만큼 후회가 더 크기 때문이다)
삼천포 남일대 해수욕장 바로 왼쪽의 작은 방파제에 우리가 타고갈 배가 기다리고 있다.
삼천포 유성호(1, 2호가 있다)
출발시간은 새벽 4시 30분.
약 10여명이 한 배를 타고 떠난다.
배 안에서 잠시 선장님과 대화를 나눠 보았는데, 젊으신 분이 참으로 친절하고 부지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5월이지만 제법 쌀쌀한 새벽 공기.
바람도 만만찮다.
내가 가는 날마다 왜 날씨가 이 모양인가?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시작된 진널 전망대가 이곳까지 이어져 있다.
고즈넉한 저곳도 언젠가는 거닐어 볼 날이 있겠지.
자, 출발이다.
좌측으로 보이는 남일대 해수욕장.
작은 크기의 해안선 모래사장이 오붓해 보인다.
그 유명한 삼천포 화력발전소.
이 주변은 발전소의 따뜻한 냉각수가 유입되기 때문에 사시사철 어족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는 약간 과장이고 뭐, 다른 곳 보다는 조금 낫겠지 생각한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오니 바람이 생각보다 더 강하다.
맞바람을 피하려 하나 마땅히 내릴 곳이 없다.
결국 오전 시간에는 신수도 칼바위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선장이 원하던 포인트는 아니지만 바람이 심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
오후에 바람이 잘 때 포인트를 이동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나중에는 결국 위 사진의 오른쪽 V자형 아래 꼭지에서 낚시를 계속하게 된다.
신수도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2년전 신수도 항구에 카페리를 타고 내렸을 때 눈에 띄는 플랜카드가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삼천포 초등학교 신수도분교장 입학식', '황○○ 어린이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해 초등학교 분교의 입학생이 단 한사람 뿐이었던 거다.
처음에 이 프랜카드를 멀리서 보고 신수도에서 고시합격자가 나온 줄 알았다.
신수도 칼바위 포인트.
포인트 명에서 연상되는 만큼 난감한 발판은 아니다.
비스듬한 각도의 갯바위가 길게 뻗어 있어 많은 수의 낚시인이 함께 설 수 있을 것 같은 포인트이다.
수심은 4~6m.
아무리 5월이라지만 너무 낮은 곳이라 낚시의 재미는 반감할 터. 가을에는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역시 바람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칼바위에서 맞이하는 칼바람.
멀리 삼천포 화력발전소가 보이고.. 날은 벌써 희뿌연히 밝아 온다.
채비를 하고 낚시를 시작하였다.
입질 무.
일행들은 라면을 끓여 소주 한잔 하기로 한다.
갯바위에서의 식사당번은 그날 구성원이 누가 되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의도적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형성된 질서다. 나는 누구와 어울리든 간에 그저 억어먹는 조에 속한다. 그만큼 연장자(?)다.
일행 한분의 와이프가 마련해준 간단 안주.
소세지 붙임, 포도 등 과일 조금, 그리고..
푸짐하진 않을지라도 갯바위에서는 그저 잘 먹는 게 남는 거다.
다시 전의를 살려 부지런히 수중을 탐하였으나 역시 바다는 묵묵부답.
안되면 또 먹는다.
이번에는 맥주 + 소주로 폭탄주를 말아 딱 2잔 씩.
술을 조금 가져온 게 다행이었다. 있으면 있는데로 다 마실 기세였으니까.
약 20m 전방에서 받은 입질.
아기 보리멸이 올라온다.
아마도 이곳은 바닥지형이 모래밭인 모양이다. 칼바위는 이 시기에 감성돔이 머무르기에 적당한 여건이 형성되는 장소는 아니리라 생각된다. 불가사리 몇 수, 망상어 한 수, 보리멸 2~3수가 여기에서의 조과 전부이다.
12시경. 결국 포인트 이동.
같은 배를 탔었던 다른 조사님들도 함께 옮기기로 한다.
목표는 삼천포 해안 갯바위.
4사람 모두 하선하였다.
오후 들어 바람이 잦아졌다지만 여전히 강하다.
지금 하선한 갯바위에 2명, 오른쪽 갯바위로 옮겨 2명이 나눠 낚시하면 적당하다는 선장 제언.
바람이 우측에서 강하게 불고 있으므로 나는 왼쪽 갯바위에서 바람을 등지고 작은 홈통 옆에 섰다.
우리가 내린 곳은 삼천포 덕명리라는 곳의 맨 아래쪽 초소 밑 포인트이다.
오늘에야 알았지만 삼천포 해안가 갯바위도 꽤 멋진 곳이 많다. 연중 대물 감성돔이 올라오는 시기가 한정이 되어 있다는 점과 전체적으로 수심이 비교적 깊지 않다는 점이 종종 출조객의 발걸음을 잡고 있기는 하다.
내 오른쪽.
사회 후배이자 낚시의 선배인 그가 열심히 밑밥을 날린다.
조류가 왼쪽으로 강하게 흐르고 내만답지 않게 파도가 발밑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
채비를 던지기가 무섭게 내가 서있는 쪽으로 순식간에 찌가 떠내려온다. 몹시 난감한 분위기일지라도 후배의 케스팅을 막지는 못한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상황 탓'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항상 '낚시 조건은 좋다'..이다. 존경스런 후배.
내가 서있는 쪽에서 바라본 왼쪽.
작은 규모의 홈통이 있고 곶부리가 길게 뻗어 있다.
흐르는 조류는 곶부리에 부딪쳐 홈톰을 돌아나오면서 다시 본조류와 합류하고 있다.
조그만 조경지역이 형성되면서 조류가 멈추는 지점을 공략하기로 한다. 아직 바람은 내 등쪽에서 불어온다.
오른쪽 멀리 일행 2사람은 역시 발 밑의 작은 홈통을 노리고 있다.
자리를 옮기고 3시간 뒤.
담배를 피려고 라이터를 당기는 사이 눈앞의 찌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원줄이 물속으로 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
챔질..
약간의 실랑이 끝이 건져 올린 30cm가량의 감성돔.
반갑기는 하지만 이 시기의 감성돔 치곤 씨알이 실망스럽다.
힘차게 찌와 원줄을 갖고 갔음에도 입술 끝에 겨우 걸린 바늘.
그런데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강하게 분다.
서있는 부표도 몸을 가누기 힘든 듯, 바람을 따라 옆으로 눕는다. 바다 표면에 일고 있는 백파.
다시 입질.
허.. 이건 뭔가?
모양만 감성돔인 깻잎 사이즈.
그래도 입질 하나만큼은 시원하다.
크든, 작든, 언제보아도 품위가 차고 넘치지 않는가? 그 녀석 참..
강적(强敵) 바람..
더 이상의 입질은 없었다.
오늘의 손실.
고급 구멍찌 2개.
이번에는 그 잘난 찌잡이 던지기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너무나 빠른 조류에 찌잡이를 묶을 시간도 없었으니.
이제 철수해야할 시간.
오후 6시 30분. 철수배가 들어온다.
선장은 처음 7시까지 낚시를 하라고 권하였었다. 보통은 저녁 늦은 시간대에 입질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 한다.
야영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조과를 올릴 수 있겠지. 그래서 그런지 요즘 갯바위 텐트에서 밤을 새는 조사가 많다.
난 그나마 대상어 얼굴이라도 보았으니 다행이었다.
같이 출조한 대부분의 조사님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빈손의 철수는 허망하다.
꿈과 기대는 좌절과 피로감으로 대체되고..
무수한 레저 중에 낚시를 선택하였던 자신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석양에 지는 노을은 살포시 내일의 희망을 던져준다.
얼마의 시간 뒤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또 바다로 향할 것이다.
낚시는 긍정적 중독이니까.
1년에 단 한번 찾을까말까한 삼천포.
그곳에서 저무는 태양은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다.
삼천포.. 내년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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